아카시와 약속했던 ‘내일 모레’까지는 시간이 매우 느리게 흘러갔다. 느리다 못해 고통스럽다고 해도 좋을 지경이었다. 2일 째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미도리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마치 무언가의 장난처럼 그 날로부터 오늘까지 미도리마와 아카시는 단 한 번도 얼굴을 스쳐지나가듯 보지도 못했다. 아니, 실은 아카시는 집에 들어온 흔적조차 없었다. 어색해서일까, 생각해봤지만 그것보다는 아무래도 아카시가 맡고 있는 프로젝트가 점점 더 아카시를 요구로 하는 일이 많아져 바빠서 그런 것이리라. 사실 미도리마도 알고 있었다. 아카시가 소중하게 여기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저 그가 너무 바쁜 것뿐이라는 것을.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지금과 같은 결혼생활은 너무나 잘못되었다고, 미도리마는 변명이라도 하듯 중얼거렸다.
오늘 만날 수는 있는 것일까.
미도리마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한 채 몇 번이고 시계를 쳐다보았다. 퇴근 시간으로부터 겨우 1시간 전을 가리키고 있는 시계는 마치 미도리마를 놀리기라도 하듯 천천히 움직였다. 아, 그나마 오늘 진료하는 환자가 많지 않은 것이 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유일지도 몰랐다. 어쨌거나 몸이 바쁘면 시간이란 속절없이 흘러가버리기 마련이니.
사정을 모르는 간호사는 미도리마가 시계만 노려보는 이유를 몰라 의아했겠지만, 어쨌거나 피곤해 보이는 그를 배려해 아무것도 묻지 않고 퇴근시간이 되기 바쁘게 뛰쳐나가는 그를 보며 자기들끼리 ‘남편이랑 데이트인가?’ ‘신혼은 좋겠네~’같은 말을 소곤거릴 뿐이었다. 속편한 그네들의 말에 정정할 시간조차 아까웠다. 미도리마의 퇴근시간인 오후 6시 정각에 울린 핸드폰은 명확하게 아카시 세이쥬로의 이름을 띄우며, ‘밑에서 기다릴게’하고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밑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누른 채, 미도리마는 아직도 초조했다. 오늘따라 세상 모든 것이 느리게 흐르는 것만 같았다. 그 바쁜 아카시 세이쥬로의 시간을 배우자가 조금 세내면 어때서, 마치 조금이라도 그의 시간을 허비하게 만들면 어딘가에서 벌이라도 받을 것만 같다. 아니, 그보다는 당장이라도 그의 얼굴을 마주보며 일상적인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며칠 전부터 미도리마를 지배하고 있는,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변화는 파국뿐이라는, 그 망할 느낌을 없애고 싶어서일지도 모른다. 아카시와 마주보고, 차분하게 대화하면 아직 두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믿고 싶은 것뿐일지도 모른다.
어리석게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초조하게 미도리마가 문을 닫으려고 할 즈음, 어디선가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여러 사람이 뛰어가는 소리, 이동식 침대의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 종합병동에서 근무하는 미도리마로써는 익숙했지만, 동시에 지금은 듣고 싶지 않은 소리였다.
병원은 갑작스레 동시다발적으로 몸살을 앓는 듯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찼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기가 무섭게, 이동식 침대에 눕혀진 채 고통스러워하는 사람과, 그 옆을 달려가는 몇 간호사들의 모습이 보였고, 그 숫자는 적어도 하나 둘은 아니었다. 어쩐지 등 뒤가 스산한 기분이었다. 그것은 며칠 전부터 미도리마를 지배하고 있는 스산한 예감과도 비슷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분명, 분명히…….
정신없이 지나가는 사람 사이로, ‘버스 교통사고’라는 말이 어렴풋이 들린 것만 같았다. 미도리마는 어찌할 바를 모르는 채로 죄인처럼 몸을 움츠리며 병원 정문을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서 아른거리는 붉은 빛만이 마치 유일한 면죄부 같았다.
이대로 주변에서, 이제 갓 레지던트 딱지를 뗀 햇병아리 의사쯤은 놓아두면 좋을 텐데.
현실은 안타깝게도 그렇게 녹록치 않았다.
겨우겨우 병원을 빠져나왔다고 안도하던 미도리마가 아카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세이쥬로.”
“신타로.”
아카시는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평소와 같이 단정한 차림이었지만, 며칠 못 본 새 그의 얼굴은 조금 더 피곤한 듯 보였다. 몇 달째 수면시간만 겨우 확보하는 그가, 이번에 미도리마와 대화하기 위해 어쩌면 조금 무리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생각할 때였다.
뒤에서 누군가 미도리마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미도리마 선생님!”
친숙한 간호사의 목소리는 다년간 쌓아온 인연에 힘입어 미도리마가 믿을만한 동료로써 신뢰해왔던 것이지만 지금만큼은 원망스러웠다. 대형 교통사고와, 밀물처럼 밀려오는 환자들. 미도리마는 보지 않아도 훤한 오늘의 당직 의사 목록을 머릿속으로 어림해보았다. 그 인원으로 지금의 환자들을 감당할 수 있을 리가 없다. 환자들의 목숨은 소중하고, 미도리마는 평소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 편이었지만, 왜 하필 지금이란 말인가.
미도리마는 대답도 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돌아보지도 못한 채 얼음처럼 굳어있었다. 아카시는 미도리마를 기다리며 상황을 어느 정도 눈치채기라도 한 것인지 애써 평상시의 표정을 가장하고 있었다. 아니, 가장해야만 했다.
“신타로, 부르고 있는데.”
“알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미도리마가 꾹, 말을 삼켰다. 다급하게 미도리마를 부르는 목소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여전히 병원 안은 분주한 발소리로 가득하고, 그리고.
마치 운명처럼, 아카시의 핸드폰에서도 벨소리가 울렸다. 화면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회사에서 그를 찾고 있는 것임에 틀림없으리라.
“오늘은 안 되겠는걸.”
아카시는 난처하게 웃었다. 어렵게 준비한 두 사람의 대화였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깨지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것처럼, 허탈한 미소였다. 아카시는 미도리마의 대답도 듣지 않은 채, 전화를 받으며 등을 돌렸다.
“……그래. 그래서 진행하던 건은 어떻게 되어가지? ……”
그리고 그와 동시에 미도리마의 어깨를 누군가 붙잡았다.
“선생님, 좀 급하게 와주셔야겠는데요. 환자가…….”
미도리마는 멀어져가는 아카시의 등만을 바라보며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이제 더는 지금과 같은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그런 예감만이 씁쓸하게 그 자리에 맴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