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9. 4. 00:00ㆍmist
하태성 생일합작에 제출한 글입니다!
하태성은 항상 좋아하고 있는데 회색도시 글은
올해 초 태성건오 개인지 이후로는 처음이네요, 이럴수가.
태성이 최애로 회도 덕질 2년차인데 주위에서 아무도 태성이 최애인 걸 안 믿어줘서
분노로 평소 쓰는 것과 방향을 다르게 해봤더니 제 안의 태성이와의 캐붕이 장난아닌...
커플링 연성이 아니지만 리버스같은 느낌이 신선하네요.
근데 여전히 태성이 최애처럼 비치는 글인지는 모르겠어읍읍
역시 앞으로는 안하던 짓 말고 평소 쓰던대로 쓰겠습니다....
원래는 신호등+추적조로 복작복작하게 쓰고 싶었는데 시간에 쫓겨서 신호등만 쓴 게 아쉽네요.
시백이가 한마디밖에 안 하다니. 억울하다아ㅏㅏㅏㅏ
분명 그 전부터 수상한 낌새는 있다고 생각했다.
“…허건오씨.”
“흐앗, 깜짝이야! 뭐야! …아, 대장나리야?”
예를 들면 이 남자의 수상한 언동이라든지.
“거 애송이 녀석 간이 작네. 사내새끼가 그래서 어디 써먹겠어?”
자신과 눈을 맞추려 들지 않는 이 남자라든지.
어쩐지 굉장히 골치 아픈 일에 걸려들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 * *
태성은 현재 심각한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진지하게 고민하고는 있었으나 사실 무엇이 문제이기에 제 앞에 이런 일이 닥쳐왔는지 전혀 이유를 알지 못하는 탓이었다. 본디 하태성이라는 남자는, 사교적이기보다는 조용하고 자신의 맡은 바 할 일만 성실하게 처리하는 타입이었으므로 더욱 그랬다. 그래서 무엇이 그러냐, 하면 한 마디로 명확히 정의하기 힘들지만 그가 느끼는 문제는 이랬다.
주위 사람들이 자신을 피하는 것만 같다.
워낙 인간관계보다는 제 커리어를 중심으로 살아왔던 태성과는 평생 인연이 없을 것만 같던 주제인데, 제 자신조차 이런 화제가 생소하다. 태성은 잠시 머쓱한 눈으로 눈앞의 남자들을 바라봤다. 떡볶이를 앞에 두고 어린애처럼 치졸하게 말다툼을 하고 있는 20대 후반의 남자들이 제 일행인 것은 물론이다.
“좋게 말할 때 그 손을 치우고 고릴라면 고릴라답게 바나나를 먹는 건 어때?”
“애송이 주제에 매워서 떡볶이는 먹겠냐? 저기 형씨처럼 오뎅이나 집어 먹어.”
거기서 왜 불똥이 이리로 튀는 걸까. 태성은 오뎅을 먹다 말고 유치한 말다툼을 진행 중인 건오와 주황을 빤히 보았다. 분명 떡볶이와 순대, 튀김, 김밥까지 다양한 메뉴를 시켜놓았는데 이 두 사람은 어째서 늘 음식 갖고 말싸움을 하는가, 에 대해 한탄을 할 시기는 이미 지나갔다. 언젠가 지나가는 말로 이것에 대해 토로해보았더니, 재호가 눈을 찡긋하며 그것이 사내들의 우정이라는 말을 하는 통에 괜히 시백이 자신의 오뎅을 탐내서 귀찮았던 적도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좋다, 정말이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태성과 눈을 마주친 건오가 흠칫 놀라더니 됐어, 오뎅은 무슨…. 하고 툴툴거리며 김밥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여기까지만 놓고 보면 그저 오뎅이 땡기지 않을 뿐, 크게 신경쓸 일은 아닐 수도 있었다. 눈을 마주치고는 흠칫, 놀라지만 않았다면 그랬을 거라는 말이다.
그리고 지금 이것으로, 건오가 태성의 눈을 피한 것이 이번 주 들어 4번째였다.
3인이 함께 살기 시작한 이래, 태성과 건오, 주황은 얼굴을 자주 보고 있었고(사실 태성이 야간근무만 없으면 매일매일 지겹도록 보는 얼굴이었다) 그렇게 자주 보는 만큼, 가끔 타이밍이 안 좋으면 눈을 피하는 것처럼 비치는 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사실 이 모든 것은 단순한 기분 탓일 터였다.
태성은 머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두 분 다, 이번 주 금요일은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그러자 건오는 갑자기 오뎅을 와구와구 먹다가, 급하게 국물을 들이키곤 콜록거리기 시작했고, 주황은 눈만 조금 굴리다가 딱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그으…. 이번에 좀 재수없게 몇 놈이 빠진다고 해서, 일이 좀 늘었는데 말이야. 나랑 애송이, 둘 다 그날은 자리에 없을 거 같은데. 왜, 무슨 일이라도 있나?”
긴 말이 한꺼번에 쏟아져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태성이 눈을 깜박였다. 마치 준비된 것처럼 술술 쏟아지는 말은 어딘가 어색하게 거절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사실 이번 주 금요일이라고 해도 태성은 별 의미 없이 어색한 분위기도 타파할 겸, 제가 쉬는 날을 지정해서 물어본 것 뿐인데, 건오와 주황은 눈에 보일 만큼 수상한 행동을 보이고 있다.
통찰해보지 않아도 두 사람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것은 알기 쉬웠다. 태성은 어딘가 가슴이 답답하다는 기분과 함께 제 앞에 놓인 오뎅국물을 마셨다. 어딘가 찔리는 듯 급하게 마신 건오도 아닌데, 자신도 괜히 급하게 마신 양 데인 듯 아파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목요일.
그날의 근무는 하필 또 야간근무였다. 어머님께는 일찍 주무시라 말씀드렸고, 출근 전에 인사나 할까 해서 찾은 건오와 주황은 한창 이야기 중이었다.
“그래서 내가….”
“…내일은 그래서….”
“…대장나리가….”
단편적으로 들려오는 이야기는 꽤 심각한 분위기를 내포하고 있었다. 내일이라니, 일이 있어서 바쁘다고 말했던 바로 그날이다. 둘이 같이 나간다고 했으니 둘이서 대화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건만, 태성은 그 모습도 유난히 마음에 걸렸다.
그러고보면 요즘 들어 건오와 주황, 두 사람과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만 같다.
물론 지금은 출근을 해야 할 시간이므로, 대화를 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러므로 태성은 단지 다녀오겠다는 인사만을 할 셈이었다.
“주황씨, …건오씨.”
그리고 흠칫, 놀란 두 사람이 천천히 뒤를 돌았다. 무엇이 그리 놀라운지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한껏 남아있다. 태성은 모르는 체, 말을 이었다. …이을 셈이었다.
“아, 아. 나 지금 좀 바쁜 일이 생각나서…. 내가 좀 밤에 하는 걸 좋아해서 말이야….”
묻지도 않은 말을 하며 건오가 황급히 일어나 자리를 떴다. 태성의 인사 같은 것은 아무래도 들을 기색도 아니었다. 아니, 자리를 뜬 게 아니라 숫제 집 밖을 나섰다. 완연히 당황한 기색의 태성은, 굳이 제 표정을 숨기지도 않은 채로 주황을 보았다.
“거 애송이 저거…. 그보다 형씨는 웬일이야, 갑자기?”
주황은 퉁명스럽게 물었다. 그 말투에 보통은 상처받을 만도 하지만, 이것이 그저 주황 본연의 성격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기분 상할 이유는 아무 것도 없었다. 태성은 그것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두 사람(+이 자리에 없는 한 사람까지)의 관계는 남들은 이해할 수 없을 평온함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묘하게 자신만 따돌려지는 소외감이 자꾸만 들어서일까, 태성은 저답지 않게 주황의 말투가 자꾸만 신경쓰였다.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나갈 시간이라, 어머님을 부탁드립니다.”
“벌써 그렇게 됐나? 어머님께는 알아서 잘 하고 있으니까 걱정은 말고 잘 다녀오라고.”
딱히 일부러 날 세워 대답하는 것도 아닐, 주황다운 대답인데도. 거절당해 내쳐지는 느낌에 태성은 대답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는 그대로 돌아서서 출근길에 나섰다. 갑작스럽게 세상 모든 것이 달라진 것만 같다. 언젠가의 다짐처럼 셋이 박근태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당연한 것처럼 어머님을 모시고 셋이서 작은 집에서 같이 지내게 되고, 주황은 작은 용역 사무실을 열고, 건오는 태성과 함께 검정고시를 준비하되, 때때로 주황의 일을 돕는, 그런 평화로운 일상이 언제까지나 쭉 계속될 거라고 언제부턴가 자신은 생각했던 거 같다.
실은 처음 주황과 건오를 알기 전의 제가 건방지게 생각했듯이, 그들과 그는 조금도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고, 이제 공동의 적이던 박근태도 없다. 그렇다면 이제 그들은 조금씩 하태성에게서 정이 떨어져,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약한 생각이 드는 것도 다 그저 기분 탓이겠지만. 고작해야 며칠 그들이 피한다고 해서 이런 생각이 들만큼 태성은 주황과 건오를 믿지 못하고 있는 걸까.
오늘만이 아니라 요 근래 종종 보였던, 두 사람만의 대화장면. 제가 들으면 안 될 것처럼 한 사람이 자리를 뜨거나 부자연스럽게 다른 화제를 입에 올린다. 태성은 주황이 운영중인 신호등 용역사무실에 일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므로 두 사람만 대화하는 일이 꼭 이번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섭섭하다. 그래, 섭섭하다.
태성은 그제야 자각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런 일은 분명 ‘섭섭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그간 비사교적인 성격 탓에 달리 친구가 없어서일까, 생소한 감각에 혼란스러웠을 뿐이다.
뒤늦은 생각이었다.
이제 그들은 자신에게 질려버렸을까, 그래서 자신을 떠나려는 것일까. 태성이 문득 고민에 잠겼다. 오늘은 큰 사건이 터지지 않고 평화롭게 지나가려는 것 같지만, 태성의 마음속은 평화와는 이미 거리가 멀었다.
겨우 손에 넣은 평화라고 생각했다. 처음 만나고, 삐걱이고, 그리고 마음을 여는 데는 단 3일이 걸렸지만, 앞으로 평생을 함께 이대로 지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자신이 너무 성급했던 것일까.
겨우 몇 년 만에 잃어버릴 정도의 사이 밖에는 안 되었던 건가.
날이 넘어가고, 동이 트고 있건만 태성의 마음은 무겁기 짝이 없었다. 그들의 행동은 날이 갈수록 어색해지고 있다. 어쩌면 이미 태성을 떠나고 싶은데도, 말을 못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들을, 놓아주는 것이 맞을지도 모른다.
태성은 고개를 숙인 채 터벅터벅 거리를 걸었다. 아침 일찍부터 도장을 청소하는 듯, 빗자루를 들고 있던 시백이 어-이! 하고 말을 걸었지만 도저히 대답할 기분은 아니었다. 꾸벅 고개만을 숙인 태성이 시백의 곁을 스쳐지나갔다.
“저 녀석 왜 저렇게 다 죽은 얼굴이야?”
뒤에 남겨진 시백만이 알쏭달쏭한 얼굴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귓가에 남았다. 답변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태성은 우울한 얼굴로 문 앞을 바라보았다. 언제나 이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에 망설임 따위는 없었다. 제 불규칙한 출퇴근으로 인해 꼭 어머니가 태성을 반겨주시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역시 불규칙한 출퇴근을 하는 주황이나, 혹은 늦게까지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게임을 하던 건오가 반겨주던, 인기척 가득하던 집이다. 새롭게 구입한 집은 거의 태성의 사비를 털어서 구입한 것이었고, 명의 역시 태성의 것이었지만 집 안의 따뜻한 기운은 분명 주황과 건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으리라. 그랬던 만큼 더더욱 태성은 고민이 많았다.
이 집에서, 주황과 건오가 없는 일상은 이제 더는 상상할 수도 없는데. 그들이 떠나버린 자신이, 더 이상 자기 자신이라고 말해도 좋은 걸까.
그들이 없이 자라왔던 28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하게, 사흘 만에 자신에게 녹아들어, 어느새 이렇게나 소중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태성은 미처 알지 못했다. 분명 처음은 그저 길거리 양아치 정도로나 가볍게 보았던 것을. 동료도, 친구도 뛰어넘어 태성에게 그들은 이제 소중한 가족이라는 것을 너무 뒤늦게 깨달은 것일까.
그동안도 주욱 소중하게 여긴다고 생각했는데도.
주황과 건오와 마주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태성은 막연하게 문을 열었다. 설마 내일 당장 이 곳을 떠난다고 하진 않을 것이다. 설사 떠난다고 말하더라도, 자신은 그들을 잡을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꼴사납다 해도 좋다. 가족이 자신을 떠난다는데 쿨하게 놓아줄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니, 그러니….
태성의 상념은 오래가지 못했다.
팡, 파팡!
“대장나리, 생일 축하해!”
“형씨, 생일 축하한다고!”
문이 열린 순간 갑작스러운 굉음에 태성은 깜짝 놀랐다. 게다가 그 뒤에 들린 말은 솔직히 말해 조금 놓쳤다.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물음표가 날아다니고, 입이 저도 모르게 헤 벌어지려는 것을 간신히 억누른 태성은, 제 표정이 보이지 않게끔 안경을 고쳐 쓰며 입을 열었다.
“…그, 게 다 뭡니까…?”
그야말로 그게 다 뭐인지 모를 일이었다. 크게 뭔가 터지는 소리가 난다 했더니, 아무래도 그것은 폭죽이었던 모양으로, 머리에서 폭죽용 리본이 미끄러져 떨어지고, 부엌 겸 복도에는 자그마한 식탁이 끌려나와 위에 케이크와 조촐한 몇 가지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다. 그 옆에선 안 어울리는 고깔모자를 쓴 주황과, 머리에 커다란 리본을 맨 건오, 그리고 흐뭇한 얼굴로 웃고 계시는 어머니까지.
이게 다 뭐지?
태성은 말없이 눈을 깜박였다. 건오와 주황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더니 답답하단 듯 한숨을 내쉬었다.
“형씨, 설마 오늘이 무슨 날인지 모르나?”
오늘? 오늘이 무슨 날이었던가. 태성은 손을 꼽아 세어보았다. 오늘은 엊그제 건오와 주황에게 약속을 거절당한 금요일이 아니었나. 분명 날이 넘어갔으니 오늘은 9월 4일일 것이고…. 음, 9월 4일? 어딘가 낯익은 숫자다.
“답답하긴. 할머니, 태성이 형 키우느라 고생 많으셨겠네. 이렇게 둔해가지고 써먹겠냐, 진짜.”
무엇 때문인지 몰라도 작은 조각케이크를 손에 들고 있던 건오는, 만사 포기한 듯 케이크를 식탁에 내려놓았다. …는 것은 페이크로, 건오는 이내 그 케이크를 다시 들었다. 그리고 그 케이크는 정확히 태성의 얼굴에 명중했다.
“자기 생일쯤은 기억해라, 엉? 기껏 비밀 유지하려고 있는 고생 없는 고생 다했는데, 감동한 척이라도 해라, 이 대장나리야.”
얼굴에 케이크를 묻힌 건지, 던진 건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의외로 처음 맞아보는 케이크빵(?)의 기분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안경에 가득한 생크림을 제외한다면 그렇다. 주르륵 제 얼굴에서 케이크가 밀려 떨어지고 태성은 얼떨떨한 마음을 담아 입을 열었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이 제 생일…이었군요.”
“이야, 비밀유지가 성공하긴 했나보네. 내 평생 대장나리가 이렇게 얼빵하게 말하는 건 처음 들어보는데 말씀이야. 어떻게 생각해, 고릴라? 역시 내 연기실력이 너무 천재적이라 대장나리 통찰에도 안 넘어가고. 크~ 끝내주지 않냐?”
“거 애송이 자화자찬도 적당히 해라. 대장나리 얼굴도 제대로 못 보고 말도 제대로 못 뗀 게 무슨…. 역시 올해의 연기대상은, 내가 받아야지.”
주황이 머쓱한 척 코를 슬쩍 훑었다. 멋있어 보이려고 한 행동인 것은 알겠지만 공교롭게도 둘 다 연기력은 완전 0점이었다. 그것을 지적하는 대신 태성이 하하 웃었다. 완전히 엉망이었다. 어머니가 가져온 수건으로 간신히 얼굴을 닦고, 깨끗해진 안경으로 바라본 케이크는 (아마 건오가 글씨를 쓴 것인지) 비뚤비뚤한 글씨로 ‘대장나리 생일 축하해!’ 라고 적혀있었다. 그 옆의 음식들은 미역국을 제외하곤 아마 주황이 만들었는지 조각이 큼직큼직하다. 그리고 아마 장식하다 만 듯한 부엌의 풍경도, 화려한 옷을 입고 눈물까지 글썽이며 제 옆에서 웃어주는 어머니의 얼굴도. 하나같이 제대로 준비된 것은 없는데 어째서 자신도 그렇게 어머니처럼 뿌듯한 기분이 차오르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제가 괜한 생각을 한 것 같네요.”
“엉? 무슨 생각?”
“아무 것도 아닙니다. 두 분 다, 아니. 어머니도 이렇게 제 생일을 축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태성이 엷게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완전히 잊고 있던 생일을, 이제 이렇게 챙겨주는 사람이 있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수선한 풍경이지만 그조차도 꿈결처럼 따스하다. 절대 그가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 삶이었다. 이런 삶을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곤… 박근태와 손을 잡기 전의 그는 상상도 못했는데.
자신답지 않은 말을 하자면, 행복하다.
마치 꿈만 같다.
태성이 눈을 떴다. 차가운 냉기가 가득한 콘크리트 벽 속에서, 그는 오롯이 홀로였다.
아아, 그래. 꿈이었나. 태성은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담담하게 중얼거릴 셈이었으나, 그 목소리에 묻어나는 것은 아마도 슬픔일 것이다.
그들을 잃은지 지금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던가.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를 사가지고 돌아온 듯, 안경 낀 남자는 손에 무언가를 가득 들고 있는 채였다. 태성은 눈을 깜박였다. 그의 얼굴에는 존재하지만, 제 얼굴에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 안경도 꿈과 현실의 구분을 명확하게 해주는 것만 같았다.
“다녀왔습니다… 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하태성씨?”
사무적인 어조로 안경 낀 남자, 현오가 질문했다. 아무래도 태성의 표정이 평소같지 않아서일까.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그리운 시절의 꿈을 꾸었기에. 그 당시는 자각하지 못했지만 분명, 사랑스러운 시간의 꿈.
그 시간들을 놓쳐버린 것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의 선택이 아니었던가.
“아니,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저… 꿈을 꾸었습니다.”
담담하게 대답한 태성이 고개를 돌려 시계를 바라보았다. 바라본 시계는 정확히 9월 4일, 12시 정각을 가리키고 있었다. 9월 4일, 하태성의 생일이었다.
이제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빈 껍데기뿐인 생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