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13. 00:56ㆍkrbs
지소님과 말하다가 뜬금없이 적녹 전력 60분
주제는 꿈, 사과, 마지막날.
60분을 하안참 넘기다못해 이건 거의 2시간인데..ㅜㅜ 으아 그래도 맘에 안들지만 일단........... 일단은...ㅠㅠ 올리는 걸로....
흐흑 적녹 내가 많이 사랑한다...
"아카시."
"……아카시 세이쥬로!"
부르는 목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 이런, 깜박 잠이 들어버렸나. 나로써는 드문 일이다. 나는 잠시 눈을 깜박이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언제나와 같이 익숙한 동아리실이었다.
눈 앞에는 이제 막 대국이 끝난 듯한 장기판이 하나 놓여있다. 이긴 것은 왕측, 그러니까 내가 두고 있던 말인 것은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체스로 따진다면 한 수만 더 둔다면 체크메이트인 상황. 그렇다면 상대는 언제나와 같이 부주장인 미도리마 신타로일 것이다. 음, 상대와 대국 중에 잠이 들었다니, 도대체 이는 어찌된 일인가.
나는 장기판에서 고개를 들어 정면을 바라보았다. 눈 앞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미도리마가, 또렷한 형상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그 외의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는 것을 보아 나를 부른 것은 역시 미도리마일테지.
나는 천천히 입을 열어 그에게 답했다.
"그래, 신타로."
"내 말을 듣긴 했냐는 것이다."
미도리마는 뚱한 목소리로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무래도 잠들어버린 시간은 짧았는지, 들키지는 않은 모양이라 나는 그저 멋쩍게 웃었다. 평소의 나답지 않은 일이기도 해서인지, 미도리마는 별다른 의심이 없는 모양이라 다행이었다. 아무래도 대국 중에 잠든다는 것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해도 실례가 아닌가. 아무리 어젯밤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해도….
……음? 그러고보니 어젯밤 나는 몇 시에 잤더라. 늦게 잠들었던가? 그에 대해선 기억이 흐릿하다. 잠에서 깬지 얼마 안 되어 잠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이겠지. 가볍게 넘겨버린 나는 일단 눈 앞의 미도리마에게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아, …미안한걸. 잠시 생각할 것이 있어서. 다시 말해주겠어?"
정확히는 생각이 아니라, 깜박 졸아버린 모양이었지만 그것은 상대에게 말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미도리마는 여전히 불쾌한 듯 인상을 찡그리며 안경을 고쳐썼지만, 그 뿐이었다.
"오늘은 시간이 늦었으니 이제 그만 가자고 말했다는 것이다."
그 말에 나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있는지 창문으로 비치는 석양빛이 눈부시다. 미도리마와 대국을 하다보면 시간이 늦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그것도 전중이 끝난 이후로는 꽤 오랜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도리마와의 방과후 장기대국은, 전중 이후로는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으니까.
오늘의 대국은 미도리마의 요청으로 이루어졌다. 메일이나 혹은 연습시간을 이용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텐데, 미도리마는 굳이 자신의 반까지 찾아와 연습이 끝난 후, 자신과 대국을 하고 돌아갈 것을 강제했다.
……그래, 강제했다. 요청도, 혹은 요구도 아니었다. 오늘 동아리실에서 보자는 것이다, 라는 간단한 한마디가 전부. 언제나처럼 동아리실에서 대국하자는 표현임은 알았지만, 내 사정은 물어보지도 않았고, 대답 역시 듣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아마도 미도리마에 대한 제 호감 때문이라는 것은 굳이 상대에게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이었다.
전중 이후로 농구부에서는 은퇴했기 때문에, 그날 미도리마와 나의 대국은 꽤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미도리마는 이번에는 꼭 이기겠다고 생각했는지, 몇 번이고 재대국을 요청했었고……. 내가 승리했다는 것은 늘 같은 사실이었지만, 어쩐지 대국의 내용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도 같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잠깐 졸았던 것 뿐인데, 어쩐지 꽤나 멍한걸.
"그래, 그럼 슬슬 정리해볼까."
그렇게 말하며 언제나와 같이 쇼기 말을 가지런히 모아 통에 정리해 넣었다. 단지 그뿐인 행동인데, 손 끝의 땀에 달라붙어 말이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거 같은. 그런 기분이다.
정리를 끝내고, 동아리실의 문을 잠그고, 코트에 목도리까지 다 갖추어 입고 학교를 나서니 이미 하늘은 어둑어둑하다. 아무래도 겨울이라 그런 것이겠지. 초하늘의 별이 반짝이고, 너와 나 사이에는 말이 없었다.
교문을 나서고, 그리고 언제나처럼 역을 향해 걷고 있을 때도, 미도리마는 그저 제 럭키아이템만을 만지작거릴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나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미도리마가 장고를 할 때의 오랜 버릇이다. 즉, 미도리마는 지금 무언가를 고민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나에게 할 말일 터였다.
"말해도 좋아, 무엇이든."
미도리마는 화들짝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네가 생각하는 것. 그렇게 오래도록 장고하다니, 신타로답지 않은걸."
내가 웃음기를 담아, 농담기 섞인 말투로 말을 이었다. 미도리마는 여전히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다. 오늘따라 그는 하나하나 심상치가 않다. 대국을 나에게 강제한 것 까지는 그렇다 치고, 마치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 처럼 몇 번이고 재대국을 신청했던 것도 그러했다. 대체 무엇이 그를 흔들어놓는가.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대답을 내어놓는 것을 보류한 채, 모르는 척 미도리마의 눈을 바라본다.
그의 눈동자는 여전히 올곧다.
"아카시. ……. 생일 축하한다는 것이다."
한참을 망설이다, 그는 어렵게 입을 떼었다. 그 말이 고작해야 생일 축하였을 뿐인데, 미도리마는 하기 싫은 말을 억지로 내뱉는 양 목소리가 힘없이 떨리고 있었다.
아, 이런 광경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다.
생일 축하를 하루가 다 저물어가는 이제야 하는 것에 대한 타박도 않은 채 나는 그저 웃었다.
"고마워, 신타로. 축하해줘서 기쁜걸."
그것은 진심이었다. 미도리마에게서 생일을 축하받을 것이라고는 짐작도 못했다. 사실 이미 생일은 지나버렸기에, 도리어 놀랍기도 했다. 미도리마라면 생일 축하는 당일, 그것도 정시에 꼭 맞춰 축하한 뒤, 커다란 럭키아이템을 선물이라며 건네줄 자였다. 이렇게 며칠 지나고서야 축하하는 것은 그답지 않았다.
전중 이후로 소원해질 대로 소원해져버렸기 때문일까. 아무런 말 없이 지나갔던 생일에조차 나는 무엇도 느끼지 못했건만.
미도리마는 여전히 고민하는 얼굴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것 뿐이야?"
"아? …아아, 그래. ……그것 뿐이야."
거짓말이다.
이번의 미도리마는 분명히 내 눈을 피하고 있었다. 거짓말을 못하는 미도리마이기에, 차마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한 것이겠지. 하지만 내가 거짓말을 눈치챌 거라는 것은 생각도 못한 것일까. 아니면, 그것을 들킨다 할지라도 하고 싶지 않은 말인걸까.
아마도, 후자일 것이다. 미도리마는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내가 그에 대해 잘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래. …굳이 일부러 축하해줘서 고마워. 사실 좀 놀랐는걸. 생각도 못한 말이어서."
"그리고, 이건 선물…이라는 것이다."
미도리마는 제 손에 쥐고 있던 것을 휙 내 손에 얹어주었다. 어디서 구한 것인지 변색 하나 없이 싱싱한 초록색 사과로, 분명 오늘자 미도리마의 럭키아이템일 터였다.
"……? 선물을 준비 못했다면 그저 마음만으로도 좋아. 이것은…."
"이것은 12월 20일자의 사수자리 럭키아이템인 것이야. 당일에 주지는 못했지만, 분명 너의 운에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미도리마는 마치 준비하기라도 한 것처럼, 긴 대사를 읊었다. 어딘가 작위적이기까지 한 대사여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이미 지나버린 럭키아이템을 주어서, 어쩌자는 것인가?
"하지만, 신타로."
"내 럭키아이템이라면 이미 예비용이 있으니 됐다는 것이다."
미도리마는 강한 어조로 거절하고는, 이내 또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마치 마지막을 말하기라도 할 것 처럼, 그렇게 울 것 같은 눈을 하고서는 아무런 말도 못하는 그가 어찌나 애처로운지 나 역시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 고마워. 맛있게 먹도록 할까, 그럼."
그래서 나 역시 웃는 것 밖에는 할 수가 없었다. 차마 알고 있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
그가 건네준 이 사과, 생일 선물로 건네준 것이 아니라 내게 이별을 고하기 위해 건네주었다는 것을. 몇 번이고 꿈 속에서 이 이별을 반복해왔다는 것을, 내가 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사과. 林檎.
한국어로는 사과謝過하다, 라는 동음이의어도 있는 그것이다.
집에서 그것을 찾아본 내가 너를 잡지 못한 것을 몇 번을 후회했던가.
아마도 그것이 기폭제였을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그날 이후로 몇 번이고 꿈 속에서 미도리마를 보았다. 나에게 헤어지자고 말하는 대신, 사과를 건네곤 도피하듯 나를 피해다니던 신타로를 몇 번이고 보았다. 사실 꿈이 아니라 시간이동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런 비현실적인 것보다도 내가 꿈에 갇혀있다고 하는 것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나는 이 사과를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가 사과의 뜻을 기억하지 못해서도, 꿈의 시작점에선 내가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아마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네가 어느날
내게 생일 선물이라는 핑계로 사과를 건네지 않는 날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자조하며 사과를 내려다 보았다. 초록빛으로 싱싱하게 빛나는 사과는 마치 미도리마와 같아 나는 속이 쓰렸다.
아마도 너를 보내고 나면 또, 나는 이 밤을 반복하겠지.
앞으로 몇 번을, 너와의 마지막 날을 반복해야할까.
앞으로 몇 번을 계속하면, 이 이별의 나날에 마지막이 다가올까.
알지 못한 채로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 너에게는 이 사과가 없기를 소망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