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코 중학교는 지역 내에서는 유서 깊은 사립 중학교였다. 개교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건물은 깔끔히 유지되고 있었고, 주택가에 위치해서인지 조용하니 면학 분위기가 조성된 편이었다. 거기에 학생들은 지역 유지의 자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다보니 문제가 일어날 수가 없었고, 학교의 평판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거기에 매년 농구부가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독차지하다시피 하니 그 명성은 지역 수준에서 그치지 않고 전국 단위로 유명해 청소년 농구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 치고 테이코 중학교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 오래된 명문 중학교에는 명물이 하나 둘 쯤 있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이미 학교의 자랑거리인 농구부가 그러했고, 입시 관련 소원에는 찰떡같다는 초대 교장의 동상이 그러했고, 열리지 않는다는 소문의 음악실이 그러했다. 그런 테이코의 명물은 움직이지 않는 사물에 그치지 않고 학생 중에도 있었는데, 이름 혹은 얼굴을 모르면 외국인임을 의심해야 할 만큼 유명한 연예인이나, 졸업생 중에는 국가대표 농구선수도 있었으며, 정재계를 주무르는 집안의 아이들도 무수히 많았다. 하나같이 내로라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런 학생들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사람을 하나 고르라고 하면 누구일까. 혹자는 아이돌 급 인기를 가진 학생 모델을 댈 것이고, 혹자는 기행을 벌여 매일같이 눈에 띄는 농구부의 한 학생을 대기도 할 것이다. 혹은.
하지만 그 누구라 하더라도 테이코 중학교에서 가장 우수한 사람이 아카시 세이쥬로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었다.
아카시 세이쥬로는 이를테면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는 대기업 총수의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으며, 그 유명한 테이코 중학교 농구부 기적의 세대이기도 했다. 그들을 통솔하는 부주장이기도 하며, 학생회 활동도 겸하고 있었으며 공부마저 전국 1위라는 소문마저 있는 자였다. 성격은 온화했고, 다정했으나 엄격하고 사리분별이 확실한 자였다. 가장 눈에 띄는 학생이자 가장 미래가 기대되는 자였고, 그 누구도 그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아카시 세이쥬로에게는 최근, 작은 고민이 있었다.
“고민?”
미도리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손에는 등교길에 사온 것이 확실한 만화책이 들려있었다. 운동부를 제외하곤 면학분위기가 확실한 학교에서 만화책이라니 다른 학생이라면 수군거리는 소리를 듣거나 징계를 받기에 충분하겠지만 그, 미도리마 신타로만큼은 예외나 다름없었다. 그 만화책이 읽기 위해서 산 것이 아니라는 것은 비닐 포장도 벗기지 않은 모습으로 잘 알 수 있기도 했고, 그가 그런 사람이 아닌 것도 확실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찌되었든, 교내 No.1 기행남인 미도리마가 어이없어 할 정도로 아카시의 고민이라는 것은 작은 일은 아니었다.
그 고민은 굉장히 사소하기 그지없었지만.
“내게 약혼녀가 있는 모양이야.”
“하아… 그야 너희 집안을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다는 거다.”
“그런데 우리 학교야.”
“비슷한 지역에 살면 그럴 수 있지 않냐는 거다.”
“너도 아는 애야.”
“…?”
미도리마가 머리 위에 물음표를 띄웠다. 인간관계가 괴멸적인 그였기에 아는 여자아이는 손에 꼽다시피, 아니 거의 없다시피 한 것을 친우인 아카시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런 미도리마가 알고 있다고? 대체 누구기에? 그보다 결혼이 내정되어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고민이 될 만한 사람이 테이코 중학교 내에 존재하기는 하는가? 지역 유지들의 자녀들이 모인 학교라 하나같이 얌전하고 집안도 건실하고 문제아라고는 하이자키 쇼고 정도 이외에는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 와중에 하이자키는 남자니 약혼의 대상조차 안 될 텐데?
“2학년의, 키세 료코라고 하더군.”
마치 청천벽력을 맞은 듯 엄숙하게, 아카시가 말했다.
아카시가 갑작스러운 소식을 들었던 것은 바로 어제 저녁의 일이었다. 하지만 아카시는 그 전부터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고 있었다. 미래를 읽을 수 있는 눈이 있기에, 라고 말했다면 미도리마는 장난하지 말라고 일축했을 것이다. 물론 아카시도 그렇게 말할 생각은 없었다.
발단은 너무나도 사소했다.
“오늘은 집에 일찍 들어오너라.”
식사를 다 마친 아카시의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입가를 닦았다. 엄격하기까지 한 생활습관 덕에 입가는 깔끔하기 이를 데 없었건만, 일종의 의례적인 버릇과도 같은 행동이었다. 무의식중에 저도 입가를 닦던 아카시는, 아버지와의 의외의 공통점에 속으로 작게 치를 떨며 되물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이니 학교 끝나고 바로 들어오도록 해. 그 부활동은 이제 어지간히 하거라.”
그걸로 끝이었다. 매사 바쁜 아버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세한 설명이나 따뜻한 말은 이미 기대하지 않은지 오래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너무 정보가 없었다. 아카시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어 아버지를 붙잡으려 하다, 손을 내렸다.
서양식으로 잘 꾸며진 저택에, 그에 걸맞는 긴 테이블. 목소리나 겨우 오가는 거리에선 상대의 심중을 읽기 힘들었다. 다급히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전하고 싶어도 이곳에서는
———거리가, 멀다….
아득한 거리감에 문득 아카시가 현기증을 느꼈다. 그대로 기절해버릴 것 같은 중압감도 함께였다.
그날 하루는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를 정도였다. 아카시는 자신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무슨 정신으로 니지무라 선배를 찾아가 오늘 부활동을 빠지겠다고 말했었는지 기억조차 희미했다. 이상한 행동을 하지는 않았는지 잠시 돌아보았으나 미도리마가 한숨을 내쉬었던 것 외에는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오늘 미도리마가 들고 왔던 럭키 아이템이 뭐였던가. 돌아보아도 역시 떠오르는 것은 없었다.
아버지와의 대화, 아니 말 한 마디 듣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동요해버릴 정도라니 아카시 가의 후계자로써 실격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아카시가 문을 열고 본채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아카싯치이이이!!!”
도도도, 라는 말이 잘 어울릴 만한 움직임으로 무언가가 달려오더니, 힘차게 아카시에게 매달려왔다. 드물게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응하지 못한 아카시가 얼떨떨하게 서있었다. 지금 자신이 뭘 봤지? 그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아니, 파악하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아카시 가에는 기본적으로 많은 수의 사용인이 있었다. 넓기만 한 저택에 거주하는 사람은 둘 뿐이었고 그 두 사람은 각자의 일로 바빴으니 저택을 관리할 사람을 고용하는 것은 필연적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예를 들면 넓은 정원을 솜씨 좋게 다듬을 정원사라든지, 넓은 저택을 청소할 메이드라든지, 언제 어느 때 중요한 손님에게 대접하더라도 낯부끄럽지 않을 요리사, 그를 도울 수많은 주방 도우미,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질 집사, 그리고….
그렇게 많은 수의 사용인을 두면서도, 아카시는 그 개인이 누구인지 파악해본 적이 없었다. 파악할 필요가 없었던 탓도 있었으나 파악하기 힘든 탓도 있었다. 아카시의 아버지는 사용인이란 무릇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조용히 자신을 숙이고 묵묵히 일하는 자를 좋아했다. 그렇다보니 사용인들은 하나같이 밋밋하고 특징 없는 유니폼에, 표정 없는 자들이 많았다. 소리 없이 다니다보니 아카시 역시 존재를 보면서도 스쳐지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집안이다. 저택 내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라고는 아카시, 그 본인과 그의 아버지 외에는 존재할 수 없었다. 수많은 사용인을 두면서도 마치 단 둘이 사는 양 적막하던 저택이었다. 그런데 방금 제 곁으로 달려온 것은 누구인가. 매달리다 시피한 아카시의 팔에 물컹하니 닿는 이 촉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