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2. 3. 04:41ㆍmist
이거말고 은창완국도 하나 더 써야되는데 그건 언제 쓰지...(까마득
어려서부터 그런 말은 종종 들었다. 너 생긴 거랑 안 맞게 성격이 제법 괜찮다고. 내 생긴 게 대체 어디가 어떻단 거야? 잘생기기만 하구만. 하고 거울을 들여다보며 푸념한 것도 제법 되었다. 세월이 지날수록 면역이 생기는지 이젠 그런 말을 듣더라도 그냥 픽 웃고는 말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유상일의 평으로는 ‘어어, 너 눈빛으로 사람 잡아 먹겠다?’ 이었는데 그러는 자기야말로 눈빛이 형형한 거 모르나? 입을 삐죽이며 불평해보았지만 은서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유상일한테 반하기라도 한 건지 상일의 편을 들기에 급급하다. 이래서 딸자식은 키워봐야 소용없다고 하지. 아이고, 내 팔자야. 여동생 곱게 키워두면 뭐하누, 저리 얼굴 하나에 홀라당 가버려서 유부남이라도 상관없다고 하질 않나.
여튼 그런 사람이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치기엔 양심에 거슬린다고 할까. 언제 하루는 홈리스 노인이 담배 한 개비만 달라고 손을 내미는 것에 무심코 지갑까지 털어주었다가 한 겨울에 발을 동동 구르며 잰걸음으로 사무실까지 걸어온 적도 있었다. 그 이후 아예 차를 사버려 추위에 떨며 걷는 일은 없게 되었지만. 회사 돈으로 불우이웃을 돕지 않게 된 것은 아마도 작은 형님의 말이 효과가 컸을 것이다. ‘정은창이, 자꾸 그렇게 회사 돈을 마음대로 쓸 거야? 그렇게 자꾸 불우이웃 돕고 다니다가는 너도 남 일이 아니게 될 거야.’ 그땐 정말 회사를 잘리는 줄 알았다.
그러니 아마 버스 정류장에서 안절부절 못하는 고3을 발견했던 것도 다 그런 것의 연장선상일 것이다. 아니, 정말로. 초조한 얼굴로 시계를 들여다보고는 주위를 둘러보는 것이 불쌍해 보였다.
“거기, 고3입니까?”
그것이 오래도록 이어질 기나긴 인연의 시작이라고는 나와 고3, 소완국 둘 중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 * *
은서가 어느 날 진지하게 물어본 일이 있었다. 오빠는 왜 그렇게 남을 돕길 좋아하냐고. 그렇게 ‘좋아하냐’고 할 정도로 오지랖이 넓지는 않다고 스스로 자부해왔건만 아무도 동의해주지 않았다. 딱히 봉사활동을 다니는 것도 아니요, 다달이 기부금을 내는 것도 아니고 단지 눈에 띄는 범위 내에서만 돕는 것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지 않던가.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완국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다.
“아니, 근데 아저씨 얼굴이 좀 그런 거랑 안 어울리기는 하거든요.”
“누가 아저씨야, 누가. 형이라고 불러라.”
“에~이.”
완국은 투덜대면서 제 앞에 놓인 주먹밥을 집었다. 깡마른 손목과는 달리 한창 자랄 나이라 먹성 하나는 좋은 모양인지 벌써 이걸로 두 개 째다. 다행이었다.
“아줌마. 여기 주먹밥 하나 추가요.”
손을 들어 메뉴를 추가하곤 다시 완국을 보았다. 생각해라, 정은창. 내가 왜 지금 여기에 있는지. 사실 생각하고 말 것도 없었다.
주먹밥 하나를 어느새 작살낸 완국이 이내 옆에 놓인 도시락 통을 나에게로 내밀었다.
“이거 감사했어요. 맛있던데요.”
“그러냐? 다행이네.”
나 역시 옆에 놓여있던 완국의 도시락 통을 내밀었다. 대강 씻어냈지만 아직도 김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것 때문에 오늘 하루 작은 형님한테 몇 번을 깨졌던가. 다행히 지각은 안 했기에 망정이지 지각을 한데다 김치냄새까지 풍겼으면 정말 머리에 숨구멍 하나 더 났을지도 모른다. 아니, 내가 무슨 폭력 조직의 조직원도 아닌데 왜 이런 공포를 맛봐야 하는 건지. 아, 역시 이건 다 성식이 형님이 너무 무서워서 그런 거라고! 호랑이 상사라는 말도 있지만 정도가 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형님은 직업을 다시 선택해야 한다. 선진상조가 그렇게 번듯한 대기업은 커녕 중소기업이라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라지만 대표이사쯤 되는 사람이라기엔 너무…. 사실 조폭 두목이라고 해도 손색없지 않아? 게다가 그 형님이라는 호칭이 왠지…. 처음엔 직장 잘못 잡은 줄 알고 사표쓸 뻔했지…. 한번 생각이 회사로 미치자 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갔다. 아, 왠지 성식이 형님이 머리에 총을 겨눌 것 같은 환상마저 보여.
나는 살짝 오한이 올라오는 느낌이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님, 저 퇴근했거든요. 제 머릿속에서도 퇴근해주시죠.
“? 추워요?”
완국이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보았다. 갑작스레 고개를 내저으며 몸을 떨고 있으면 그야 이상하게 보이겠지.
“그런 거 아냐.”
부정했더니, 완국이 아, 네에. 하고 대답하곤 이내 제 앞에 놓여있던 따뜻한 국물을 내 앞으로 밀어주었다. 안 믿는구만, 이거. 그래도 아직 어린 아이가 챙겨주려는 마음이 기특해 국물을 떠서 마시기 시작했다. 따뜻한 국물이 들어가니 오한도 가라앉고 진정되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아저…형은 참 보기랑 다른 사람이네요.”
이야기가 되돌아왔다. 완국은 떡볶이를 집어먹으며 말을 이었다. 보고 있으니 참 신기하다. 저 조그만 입 어디로 분식들이 다 들어가면서 말까지 할 수 있는 거지. 아, 국물도 마신다.
“대체 내가 보기에 어떻다고 다들 그러는 거야?”
내가 나지막이 투덜거렸다. 그러자 완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게 뜨인 눈동자는 형광등 아래에서 옅은 색으로 반짝이고, 속눈썹이 길어서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제정신 아닌 생각이었다.
“아저씨 되게 날카롭게 생겼잖아요. 저 아침에 진짜 죽는 줄 알았거든요. 와, 차가 열리더니 안에서 웬 조폭아저씨가 뙇하고!!”
완국은 수선스럽게 말을 이었다. 형이라고 불러주더니, 결국 아저씨로 원상복귀냐. 그보다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말이 있어 지적했다.
“누가 조폭아저씨라고?”
“그야 형이.”
“내가 어딜 봐서 조폭이라는 건데?”
“어디를 보나 전부 그렇잖아요. 그 양복이라던가, 힘들어간 눈매라던가. 오오, 그러니까 진짜 무서워요, 형. 진짜 사람 하나 잡아먹겠네.”
겁먹은 표정은 하나도 짓지 않은 주제에, 완국은 조잘조잘 잘도 떠들었다. 그냥 날 놀리는 것이 즐거운 걸까. 저걸 그냥 콱 꿀밤이라도 먹일까, 생각하다가 때릴 곳이 보이지 않아 그만두었다. 체구가 작고 깡말라서 그런가, 멀쩡한 사내놈 보고 때릴 곳이 없다고 생각해보긴 처음이었다. 은서 외엔 이런 기분 느껴본 적 없는데.
“조폭 아니고 멀쩡하게 회사 다니고 있거든.”
화를 억지로 억누르며 명함을 꺼내어 완국에게 건넸다. 선진상조에 입사한 이래 명함은 만들어도 쓸 일이 없어 처치곤란이었건만, 이런 때 쓰라고 만들어 뒀나 보다. 완국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명함을 받아 이리저리 돌려보고 불빛에 비춰보고 있었다.
“그렇게 비춘다고 숨겨져 있는 암호가 나오는 것은 아닌데.”
머쓱하게 말했더니, 완국이 배시시 웃으며 명함을 지갑 속에 넣었다. 보통 저 나이 대 남자애들이 지갑을 들고 다니나? 고등학교 시절 뭐든 들어오는 대로 주머니에 쑤셔 넣던 어린 자신과는 영 딴판이었다. 단정하다고 해야 하나.
“아뇨, 신기해서. 이거 가져도 되는 거 맞죠? 아저씨 이름 정은창이구나. 생각보다 평범한 이름이네요.”
“내 이름이 평범한 게 뭐.”
“제 이름이 특이해서, 평범한 사람 보면 부럽고 그런 거죠 뭐. 근데 아저씨네 회사 인력난인가 봐요? 아저씨 같은 사람도 뽑아주고.”
“너 그 조폭 손에 맞고 싶지?”
장난처럼 말하고 손을 올렸더니 완국이 까르륵 웃으며 고개를 잽싸게 숙이는 시늉을 했다. 처음 봤을 때의 인상과는 영 딴판으로, 장난기 많고 수다스러운 모습이 과히 싫지 않았다. 아니, 이런 느낌의 막내 동생이 있으면 딱 좋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장난처럼 입을 열었다.
“야, 너 혹시 내 동생할 생각 없냐?”
“엑.”
완국은 과하게 놀란 얼굴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잠시 생각하는 기색으로 말이 없었다. 내가 완국을 계속해서 빤히 바라보고 있자니, 완국이 시선돌리는 것을 관두고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그게 무슨 귀신 싸나락까먹는 소리래요? 요즘 조폭시장이 많이 어려운가? 저같이 비리비리한 애도 뽑아주고?”
“조폭 아니라니까, 이게 확.”
“아, 그럼 절 뽑을 이유가 없잖아요. 회사 인력난 심각해요? 하긴 그건 형을 뽑은 시점에서 견적이 나온다, 그럼그럼. 근데 저 내년에 대학갈 거예요. 취업파 아니라구.”
“누가 우리 회사 들어오랬냐? 내 동생하라니까?”
농담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완국은 한참 말을 돌리더니 이내 침묵했다. 난처한 것인지 장난스럽던 표정이 조금 흐려졌다. 그 얼굴은 처음 완국과 만났던 아침나절과 비슷하면서도 달라서, 나는 문득 미안해졌다. 그런 얼굴을 하게 만들 셈은 아니었는데.
“형. 지금 농담 아니죠?”
“미안하지만.”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진지한 표정을 지었더니, 완국은 고개를 갸웃하고는 다시 물었다.
“왜 갑자기 동생이예요? 아까 형 여동생도 있다면서요.”
“그거랑 이게 같냐?”
“이상하니까 그러지. 길가다가 만난 고3 차 한번 태워주면 아무한테나 동생하자는 건 아닐 거잖아요. 내가 부모형제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뭐라고 말해야하나, 나는 나 자신도 잘 설명할 수 없는 기분에 잠시 뒷목을 긁적이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서, 내가 싫냐?”
“어, 그게 왜 그렇게 돼요?”
“싫지 않으면 그냥 받아줘라.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완국은 완연히 당황한 기색이었다. 당황스럽겠지, 그 기분은 알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마음도 없었다. 눈을 빤히 보고 있으니 완국이 눈을 조금 굴리며 시선을 피하곤 다시 물었다.
“그, 싫지 않으면 무조건 형제가 되는 법이 어딨어요? 치사하네. 그런 식이면 대한민국은 전국민이 형제의 나라일거라구요.”
“형제한다고 죽냐? 내가 무슨 죽을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오늘 내가 너한테 차태워줘, 도시락 바꿔줘, 밥 사줘, 이정도 했는데 그럼 그냥 감사합니다~ 만 하고 입씻으려고?”
완국의 정론에, 나는 고집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쯤되면 어린아이라도 내가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것쯤은 알테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대로 헤어지기는 아쉬웠고 완국은 놓아주기에 아쉬운 상대였다. 하지만 오늘 만난 그와 나는 친구도 무엇도 아니었고, 그저 가끔 길가다 마주치면 데면데면하게 인사나 두어마디 하다가,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아무것도 아니었던 인연이 되어버릴 것이 싫었다. 아니, 정말 그뿐인지는 모른다. 나는 지금 내 자신의 마음도 들여다보기 어려웠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뭐. 합리적으로, 앞뒤를 따져 말이 되는 이야기만 하는 사람이 대체 어디에 있다고. 있다 해도 그런 건 정은창이 아니다.
“전국민이 형제의 연을 맺지는 않아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끼리는 형, 아우 하고 지내는 나라 아니냐?”
그렇게까지 말했더니 완국이 한숨을 폭 쉰다. 나 보란 듯이 행하는 행동이건만, 작은 동작 하나 밉지 않은 아이였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완국이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다고요 형. 그럼 형이니까, 오늘 밥은 형이 사는 거죠?”
어차피 내가 살 생각으로 데려온 거지만, 나는 반색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 들은 모든 말 중에 가장 반가운 말이었다.
“잘 생각했어, 고3. 아니지, 동생.”
그렇게 말하며 손을 뻗어 쓰다듬은 동생의 머릿결은 무척 부드러워서, 그것이 습관이 되리라 나는 직감했다. 완국이 싫어하는 기색이든 어쨌든, 나는 내가 원하는 만큼 실컷 머리카락을 헤집은 뒤 말했다.
“그럼 거기 번호로 연락해라. 안 하면 알지? 교복 딱 기억하니까, 내일 학교 앞으로 데리러갈 거야.”
“연락하면 당연히 데리러 와야죠, 무려 동생이 집에 가는데 데려다줘야지.”
입을 삐죽이던 완국이 이내 배시시 웃었다. 아까까진 거절하던 녀석이 넉살도 좋지. 정말 볼수록 맘에 드는 녀석이다. 그 미소가 무엇 때문에 맘에 뿌듯하게 차오르는지도 모르는 채, 나 역시 완국을 마주보고 웃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었다.
그것이 오래도록 이어질 그와 나의 기나긴 인연의 시작이었다.